누가 술을 권하였노
술 권하는 사회
당신의 역할:
아내
원 참, 누가 술을 이처럼 권하였노.
남편
누가 권하였노? 누가 권하였노? 흥 흥. 그래, 누가 권했는지 마누라가 좀 알아내겠소?
아내
자아, 옷이나 먼저 벗으셔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요. 오늘 밤에 잘 주무시면 내일 아침에 아르켜 드리지요.
남편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야. 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어. 할 말이 있거든 지금 해!
아내
지금은 약주가 취하셨으니, 내일 약주가 깨시거든 하지요.
남편
무엇? 약주가 취해서? 천만에, 누가 술이 취했단 말이요. 내가 공연히 이러지, 정신은 말똥말똥 하오. 꼭 이야기 하기 좋을 만해. 무슨 말이든지… 자아.
아내
글쎄, 왜 못 잡수시는 약주를 잡수셔요. 그러면 몸에 축이 나지 않아요.
남편
아니야, 아니야, 그런 말을 듣자는 것이 아니야. 옳지, 누가 나에게 술을 권했단 말이요? 내가 술이 먹고 싶어서 먹었단 말이요?
아내
자시고 싶어 잡수신 건 아니지요. 누가 당신께 약주를 권하는지 내가 알아낼까요? 저… 첫째는 홧증이 술을 권하고 둘째는 '하이칼라'가 약주를 권하지요.
남편
틀렸소, 잘못 알았소. 홧증이 술을 권하는 것도 아니고, '하이칼라'가 술을 권하는 것도 아니요. 나에게 권하는 것은 따로 있어. 나에게 '하이칼라'는 아무 소용도 없소. 나의 소용은 술뿐이요. 흥 또 못 알아듣는군. 묻는 내가 그르지, 마누라야 그런 말을 알 수 있겠소. 내가 설명해 드리지. 자세히 들어요.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아내
조선에 있어도 아니 다니면 그만이지요.
남편
허허, 기막혀. 그 한 분자된 이상에야 다니고 아니 다니는 게 무슨 상관이야. 집에 있으면 아니 권하고, 밖에 나가야 권하는 줄 아는가 보아. 그런 게 아니야. 저 우리 조선사람으로 성립된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아니 못 먹게 한단 말이요. 내가 술을 먹고 싶어 먹는 게 아니야. 몸은 괴로와도 마음은 괴롭지 않았으니까. 그저 이 사회에서 할 것은 주정군 노릇밖에 없어…
아내
공연히 그런 말 말아요. 무슨 노릇을 못해서 주정군 노릇을 해요! 남이라서…
남편
그래도 못 알아듣네그려. 참, 사람 기막혀. 본정신 가지고는 피를 토하고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하지, 하루라도 살 수가 없단 말이야. 흉장이 막혀서 못 산단 말이야. 에엣, 가슴 답답해.
아내
술 아니 먹는다고 흉장이 막혀요?
남편
그르지, 내가 그르지 너 같은 숙맥더러 그런 말을 하는 내가 그르지. 너한테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으려는 내가 그르지. 후우. 아아 답답해!
아내
왜 어디로 가셔요. 이 밤중에 어디를 나가셔요. 내가 잘못하였습니다. 인제는 다시 그런 말을 아니하겠습니다. …그러게 내일 아침에 말을 하자니까…
남편
듣기 싫어, 놓아, 놓아요.
아내
에그, 왜 이리 하셔요. 인제 다시 그런 말을 아니한대도…
남편
이건 왜 이래, 저리로 가!
아내
가버렸구먼, 가버렸어!
아내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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